최근 세계 경제의 상황이 말이 아니다. 특히나 유럽의 수장으로 여겨지고 있는 독일은 2023년과 2024년 2년 동안 마이너스 성장을 하면서 독일의 몰락이라는 오명을 얻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내가 처음 독일로 유학을 온 2014년에는 상상할 수 없었다. 그 당시 한국에서 독일은 성공한 복지 국가의 표본으로 자리 잡았었고, 많은 이들이 독일의 경제,사회, 교육 모델을 따라야한다는 분위기가 형성되기도 했었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면 내가 독일로 오게된 것도, 이런 사회적 여론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할 수는 없다.
사실 나는 학부 때 이미 미국 유학의 꿈을 꾸면서 어느 정도 준비도 했었다. 부모님의 완강한 반대로 우선은 한국의 대학원에 진학 한 뒤 미래를 고민해보는 걸로 타협을 했다. (사실 한국 대학원 진학도 나의 예상처럼 순탄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쓰라린, 가슴을 후벼파는 듯 아팠던 경험은 앞으로 나의 인생에 많은 변화를 주었다.) 약 2년 후 당시 다니고 있던 대학원에 자퇴서를 제출하고,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당시 독일 유학에 대해 조언을 구했던 친구 선배들은 하나같이 반대를 했었고, 미국으로 향할 것을 종용했었다. 이럴 때 마다 깊은 곳에서 자고 있던 내면의 반골기질은 독일행이 옳다고 속삭였다.
나의 전공인 화학은 유럽에서 시작되었고, 독일에서 꽃을 피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독일의 영향은 거대했다. 당시나 지금이나 글로벌 화학업계에서 독일회사의 영향력은 막강했다. 덤으로 나는 코흘리게 시절 밀리터리 덕후가 될 뻔했었다. 그러니 내가 독일행을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단지 독일어를 하나도 모른채 독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뿐....
독일 공항에 첫 발을 내 디딜 때의 그 감정은, 미래에 대한 걱정, 고민보다는 해방감에 가까웠다. (한국 대학원은 과잉노동, 학생의 노예화로 희화화 되지 않았었던가. 나도 예외가 아니였다. 아니 아마 피해 당사자였을지도 모른다.)
운이 좋게도 독일의 한 대학교와 근처 막스 플랑크 연구소 (Max-Planck-Gesellschaft, MPG)의 협력 프로그램을 통해서 석사 학위를 위한 공부 할 수 있었다. 한국 대학원에서 2년동안 구르고 구르고 온 나의 야심찬 목표는 석사 2년 박사 3년, 도합 5년 만에 학위를 완수하는 것. 독일 석사는 한국과 다르게 수업 위주로 진행이 되었었고, 졸업 전에 석사 논문을 쓰는 것으로 학위가 마무리 되었다. 운이 좋게도 석사가 끝나갈 무렵, 다른 막스 플랑크 연구소에서 나를.. 이 미천한 나를 박사 학생으로 받아 주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박사생활의 첫 시작은 그렇게 쉽지 않았다. 분야를 바꿔서 진학하는 바람에 다른 학생들이 꽤나 깊게 알고 있는 지식들이 나는 부족했다. 3년 계약인 박사과정을 계약의 연장 없이 끝내야한다는 강박관념이 나를 짓눌렀다. 그래서 더 고통스러웠다. 첫 1년 반은 주말도 거의 쉬지 않았고, 휴가도 다 쓰지않았다. 나는 나를 노예화했다. 신이 도와주신건지 그 이후로 논문을 쓸 수 있는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3년.... 박사과정이 끝났다.
독일에 도착한 그 시점에서 딱 5년 1개월 이후 나는 Dr. Kim 이 되었다.
To be Continue...
